Sunday, May 07, 2006

프로야구, 박찬호에 대한 추억

국민학교 6학년인가 프로야구 출범을 하면서 각 구단에서는 흥행을 위해 어린이 회원을 모집하면서 각종 경품을 얹어 주곤 하였다. 나 역시 무슨 마음인지 당시 MBC 청룡에 가입해 경품을 받아 한참 신나했었던 것 같다. 텔레비젼 중계가 잦지 않았던지라 숙제를 하면서도 라디오 옆에 갖다 놓고 경기 중계를 들으며 손에 땀을 쥐곤 하였던 것은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고등학교 이후로는 그다지 프로야구에 몰입하진 않았으나 회사에 취직한 후에는 프로야구 플레이오프나 한국시리즈가 열리면 회사 동료, 선후배들과 프로야구에 빠져들곤 하였다. 단지 이유는 내기 베팅을 하기 위해서... 결승전이 벌어질 때면 어느 누가 경기 전날부터 가로 세로 줄 그어 칸을 만든 소위 '빙고판'이 돌았다. 각 칸은 두 팀간 점수를 의미하는데, 이를 우린 '구좌'라 불렀다. 보통 한 구좌당 오천원씩 했으니, 당첨된 사람은 10만원 전후로 배당금을 받고, 아깝게 탈락한 사람도 얼마씩 위로금을 배당해주는 식이었다. 이런 날은 소주에 삼겹살해서 파티가 벌어지곤 하였다. 물론 보통 당첨된 사람이 쏘는 것이었지만... (자세한 빙고 방식은 개별 질문하시길...)

그러다 다시 몰입하여 일일히 챙겨 보게 된 것이 박찬호의 경기였다. 그 당시 직장다니던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하였을 것 같은데, 박찬호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모두들 매이닝 결과에 온 신경을 집중하였었다. 서울 본사에 근무하던 그 당시, 박찬호 경기는 보통 한국시간으로 점심 무렵에 열리었기에, 휴게실과 은행내에 설치된 텔레비젼 앞에는 점심 일찍 먹고 모인 직원들로 붐비었다.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아예 점심을 텔레비젼이 설치된 식당 찾아 점심 시간 내내 밥먹으며 경기를 보곤 하였다. IMF로 인해 분위기 살벌하던 그 당시, 박찬호의 경기와 그의 호투는 일종의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 이후 텍사스로 이적한 박찬호가 4년 넘게 부진하여 청량제로서의 수명이 다했나 싶었다. 그러던 그가 요즘 다시 살아나지 않나 싶다. 어제도 9이닝 무실점 투구한 것이 반갑게만 들린다. 낯설은 땅에서 힘들게 일어선 과정, 재기에 성공하는 인간 승리, 이런 것이 메이저리그와 프로야구의 상업성을 뒤로 하고 박찬호를 매력있게 만드는 것이겠지만, 거기에 덧붙여 그가 제대로 날기 시작한 97년, 98년, 그의 투구 하나 하나에 우울한 기분도 실어 보내던 당시의 추억이 그를 못잊게 만든다.

후기: 프로야구 출범 직후 원래는 가장 약한 팀이라고 했던 삼미를 응원했었다. 수정이도 같은 이유로 그랬었다 하고... 한참을 지나도 워낙 지기를 되풀이하던지라 어린 마음에 그냥 응원팀을 확 바꿔버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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