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November 06, 2005

내 머릿속의 지우개

얼마전 [내 머릿속의 지우개]라는 영화를 봤었다. 여주인공(손예진)이 젊은 나이에 노인성 치매를 겪으며 하루 하루 기억이 사라지고, 그녀를 옆에서 안타까워하며 지켜주는 남주인공(정우성)의 얘기였다.
 
영화 자체가 큰 감흥을 주거나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육체가 병들어 죽는 것과 기억이 사라져 자아 역시 사라지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하고 가끔 생각하던 것을 영화가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고, 경험의 폭이 많아지고, 사귀는 사람, 스쳐 지나가는 사람,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 계획했던 일들, 이 모든 것이 뒤죽박죽 입력이 되면서 머릿속은 점차 혼란스러워졌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삶은 괴로울 것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하루 하루 살기 위해서라도 그 기억의 일부는 어딘가에 떨궈두고 잊어야 새로운 것을 입력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때 난 무얼 했었지' 하고 문득 생각에 잠귀어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순간을 경험하며 당황했다. 지나간 시간이 덧없고, '나'라는 존재의 일부가 사라지는 기분. 그러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하고 일기, 메모를 적는다. 그 때 그 당시를 상기시켜줄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서. 마치 손예진과 정우성이 열심히 사진을 찍고 메모를 남겨놓듯이.
 
그런데 정작 논문을 쓰는 과정은 그 반대로 하고 있다. 머릿속에 뒤죽박죽 쌓여 있는 것과 책장에 뭉쳐진 서류/책 더미를 뒤지며 정리를 하고, 문자로 배설하며 정리된 이후에는 일부러라도 머릿속에서 잠시 지워두려 한다. 왜냐? 다시 쳐다보기 지겹고 부담스럽기 때문에... 그 수많은 미로를 헤쳐 나가다 그냥 지우개로 확 지워버리고 새로운 걸로 채워 놓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하면 새로운 것은 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지?

2 comments:

Daniel Lobo said...

So you are going to take revenge on my Spanish Blog and built this temple of wisdom in Korean... Show some mercy, give me pictures!

Hyun said...

Had no intention to take revenge :P
Will provide some pictures soon :)